만성질환약 오래 먹어도 건강한 아이 낳을 수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5년간 항류마티스 제제, 스테로이드 제제, 소염진통제를 복용한 이모(34)씨. 최근 임신 40주를 꽉 채워서 3.76㎏의 건강한 딸을 자연분만했다. 이씨는 결혼 직전까지도 ‘약을 오랫동안 먹었기 때문에 임신은 해도 건강한 아이를 낳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었다. 그러나 임신 전 상담에서 주치의는 “미리 염증 수치를 낮춘 다음 태아에 이상을 유발하지 않는 약으로 바꾸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만성질환 치료제 먹어도 임신 안전

가임기 여성 10명 중 1~2명은 장기간 약을 복용한다. 그런데 상당수가 약을 먹은 사람은 임신을 하면 안된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속설이 된지 오래다. 미리 임신 계획을 세워서 치료·관리를 잘 하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박중신 교수는 “오랜 기간 약을 먹으면 태아에게 기형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신을 하면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며 “임신 전 질병으로 인한 몸의 이상 수치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태아에게 영향을 거의 끼치지 않는 약을 쓰면 충분히 해결된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겠다고 맘대로 약을 끊는 여성도 있는데, 자신의 건강 뿐만 아니라 태아의 건강도 망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하다. 박중신 교수는 “예를 들어 뇌전증(간질)을 앓는 여성이 임신 중 약을 끊으면 발작 위험이 올라가서 임신부도 위험하고 태아의 뇌 손상 위험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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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뇌전증, 엽산 섭취 필수

만성질환으로 약을 복용하는 여성은 계획 임신이 필요하다. 혈당·염증·혈압·호르몬 수치가 조절되지 않은 채로 임신하면 유산이나 태아 기형 위험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임신 중에 먹어선 안 되는 약도 있다. 가임기 여성에게 다발하는 질환 별 임신 전후 치료·관리에 대해 알아본다.
당뇨병·고혈압=혈당이 높을 때 임신하면 아이의 심장·신경관 등에 이상이 생길 위험이 건강한 임신부보다 최고 5배 올라간다. 일단 혈당을 낮춘 뒤 임신 계획 단계부터 엽산을 다른 질환을 앓는 여성보다 많이 먹는다. 기존에 먹던 약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당뇨병 환자에게 주로 처방하는 혈당강하제는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태반을 통과하지 않는 주사약 인슐린을 임신 계획 단계부터 써야 한다. 또 젊은 고혈압 환자는 신약 치료를 많이 하는데,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은 칼슘채널차단제 같이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혀진 기존 약을 써야 한다.

자가면역질환=류마티스관절염이나 루프스(신장·폐·신경 등 전신에 염증을 만드는 질환)를 앓는 여성이 염증 반응이 심할 때 임신하면 유산 위험이 높다. 따라서 임신 전에 염증 수치를 낮춘 뒤, 태아에게 위험이 적은 약을 복용해야 한다. 대한류마티스학회에 따르면, 류마티스관절염 임신부의 경우 미리 임신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의 유산 비율이 준비한 사람의 3배 이상이었다. 박중신 교수는 “임신 중에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면역 반응이 떨어지기 때문에 류마티스관절염 증상이 완화된다”며 “루프스는 임신 자체로 병이 악화되기는 하지만 계획 임신을 하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뇌질환·정신질환=뇌전증을 앓는 여성은 임신 전 엽산을 다량 섭취해야 한다. 뇌전증이 있으면 태아의 신경관 결손 위험이 높아지는 탓이다. 약도 태아에게 영향이 적은 종류로 바꿔야 한다. 또 우울증·조현병(정신분열병) 같은 정신질환도 약만 바꿔 먹으면 충분히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갑상선질환=갑상선호르몬 수치가 불안정할 때 임신하면 자칫 지능이 낮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갑상선호르몬 수치가 안정됐을 때 임신하는 게 좋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은 특별히 약을 바꿀 필요는 없지만, 갑상선기능항진증은 메티마졸 대신 프로필치오우라실로 약을 꼭 바꿔야 한다.